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 시상식을 떠올리면 마석 모란공원의 짙은 풀 냄새가 기억난다. 작년 5월, 그곳에서 “땅을 돈을 위한 수단이 아닌 다양한 생명들이 머무는 곳으로 대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내가 카메라로 담은 ‘현장’은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다. 서울시의 일방적 개발 계획으로 이곳에 입주해 있던 사회적기업 및 여러 단체들이 퇴거했고, 서울시는 이 땅을 기업 매각 대상 부지로 선정했다. 공간은 순식간에 부서졌고, 하얀색 펜스로 둘러싸였다.

소중하게 여긴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곳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무작정 카메라를 들었다.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 한가운데 자리한 느티나무를 주인공 삼아, 땅을 그저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 넘치는 기획도 했다. 여기서 간과한 것은 나는 땅과 나무와 관계 맺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서울의 땅에는 시도 때도 없이 거대한 펜스가 세워지고 펜스가 벗겨진 땅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해 있다. 서울의 나무 또한 그것이 그곳에 있었는지 알아차리기도 어렵게 순식간에 잘리고, 다른 나무로 교체되곤 한다. 사람 또한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환경으로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돈다. 모두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머물던 사람들이 떠나간 서울혁신파크에서 나는 어떻게 이곳의 땅과 나무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이 땅을 빙글빙글 돌며 이곳에 있는 것들을 찍고 관찰했을 뿐이다.
2025년 4월 서울혁신파크는 부지 매각 입찰이 불발되었다. 하지만 곧 있을 지방선거 이후 서울시장이 바뀐다면 이곳은 또 어떠한 형태로 개발될 것이다. 서울시는 혁신파크 땅을 십여 년 동안 방치되어 온 ‘유휴부지’라 표현한다. 서울혁신파크를 걷다 보면 ‘서울혁신파크’라는 이름이 테이프로 가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문서와 기사에서 이곳을 서울혁신파크가 아닌 옛 국립보건원 부지라 부르며, 이곳의 역사와 이름을 지우려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가 없음에도 혁신파크 주변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혁신파크 외부를 스쳐 지나가거나 이런 설명만 들으면, 그곳이 텅 빈 슬럼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펜스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찬란한 초록빛이 있고,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자전거 연습을 하며,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하고, 여전히 새싹과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온다. 이곳은 공원이다. 땅은 아랑곳 않고 생동한다. 일방적 개발은 이러한 땅과 땅에 존재하는 이들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기후위기로 더이상 막연한 개발에 대한 낙관이 불가능한 지금, 서로를 자원으로 보는 것을 멈추고 어설프더라도 다른 존재들과 꾸준하게 관계 맺으며 서로를 살피고 싶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고 서로 관계 맺으려 하는 시도가 투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안녕하세요. 이태원참사에 대한 청년들의 시선과 그들의 일상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LOOK AGAIN>을 연출한 신호선입니다. 2025년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의 제작지원을 받고 1년이 지나서야 소식을 전합니다.
작년 초여름 특조위 진상조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즈음 저는 <LOOK AGAIN> 인터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왜 나라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동생(윤섭)과 참사 현장에 있었지만 그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친구(아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더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뜻밖에도 저의 무관심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참사 당일,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를 걱정하며 문득 장례식장에 가는 상황이 떠올라 겁이 났습니다. 다행히 친구에게는 무사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참사 이후 이태원참사 미디어팀 활동을 하던 와중에도 친구와 가끔 안부를 물었지만, 이상하게 이태원에 대한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인터뷰를 계기로 참사 당일과 그 이후에 대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거 봐, 놀러 가니까 그런 일 생기잖아. 한 번 그런 위험을 피하고도 또 놀고 싶니?' 내가 되게 잘못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 괜히 거기 놀러 갔나? 못 놀겠다 다시는 못 놀겠다.”
“나는 그냥 거기 놀러 갔고, 잠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가 그냥 빠져나온 사람 그거밖에 안 되는. 이기적이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커.”
처음 친구의 말을 듣고 어딘가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이제까지 이야기 나누지 못했을까?’

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섭이 타일 일을 시작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어떤 환경인지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보였지만 적응해가던 그에게 제가 했던 말은 그저 “하는 일은 어때? 할 만해?”였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비로소 저는 동생이 매일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현장을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윤섭과 아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이 도움과 위로가 될지 몰라 망설이고, 걱정하면서도 조심스러워 말을 아꼈던 순간들이 어쩌면 우리 사이에 벽을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저는 관심을 드러내고 먼저 말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왜 나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가을을 지나며 ‘나는 왜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두지 못했을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점점 바뀌었습니다.

<LOOK AGAIN>을 뉴스타파 목격자들 채널에 공개한 후, 참사 생존자와 재난 경험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디서부터 연결해야 할지 보이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특조위 청문회 이튿날 자캐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고민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경유했더라도, 저마다의 경험과 느끼는 무게가 달라 어떤 이는 말하지 못하고 어떤 이는 계속해서 말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태원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 그리고 당일 모였던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 새벽에 뉴스를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 그리고 유가족들. 다양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우리는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이에 벽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일까요. 저에겐 새로운 질문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 대해 더 알 수 있을까? 연결될 수 있을까?”

앞으로 저는 이 질문을 붙들고 현장을 찾고,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단절’과 ‘연결’은 반대말도, 닫힌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절됐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다른 방향에서 보면 연결돼 있기도 하고, 연결돼 있다고 믿었던 관계가 사실은 단절돼 있기도 한 것처럼요. 단어나 상황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지지 않기를. 이 글을 마치며, 미래의 저에게 작은 당부를 남깁니다.
수많은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계신 분들의 안부도 궁금합니다. 언젠가 만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끔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혹시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거나 관련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으시다면 편하게 메일 주셔요 :)
신호선 메일 : xino.film@gmail.com

안녕하세요. 2025년에 ‘무지개조선소’ 현장의 POV 지원을 받은 감독 양동민입니다. 제가 지원받은 ‘무지개조선소’는 지난 내란에 맞선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들을 부를 마땅한 이름이 없어 ‘말벌’이라고 불리웠던 동지들 간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진짜사장 한화에 맞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2025년 1월부터 한화빌딩 앞에서 농성투쟁을 시작했는데요. 눈덮인 겨울날, 한화는 빌딩 앞에 텐트를 치는 것조차 용역들을 동원해 막았습니다. 그 날 60여명 가까운 동지들이 모여 밤새 오픈마이크를 하면서 거제에서 올라온 노동자들과 함께 밤을 새웠는데요. 이후 김형수 지회장은 우리의 요구를 담은 배를 만들어야겠다며, 다가오는 2월 설 연휴 때 몇몇 말벌 동지들과 함께 ‘무지개조선소’를 차렸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 나무로 된 배를 만들고 색칠하면서 우리가 같이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1년 반이 지난 오늘, 그 배를 같이 만든 사람들은 이제 ‘말벌’이라는 애매한 호칭보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동지들이 되었습니다.
‘무지개조선소’는 내란에 맞선 투쟁에서 만난 우리가 함께 꿈꾸고 그래서 공명할 수 있었던, 해방과 평등의 세상에 대한 우리의 열망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상에 나오는 동지들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다시 꺼내어볼 수 있는 공동의 투쟁의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편집 작업을 많이 진행하진 못했는데요^^;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끌어내렸어도, 이재명 정부 아래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로비에서 끌려나오고,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공익제보했던 지혜복 교사는 고공농성을 시도하다 잡혀 끌려가고, 336일 고공농성을 했던 고진수 지부장은 지혜복 교사와 연대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5.18 당시 항쟁에 참여했었고 광주에서 진주로 연대투쟁을 갔던 화물노동자는 열사가 되고, 이주노동자들은 계속 더 많이 죽고 다치고, 광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퍼진 요구였던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뒷전이고, 택시발전법을 개악해 최저임금에서 제외시킨다고 해서 택시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한지 한달이 되었는데, 그 와중에 윤석열과 ‘주 69시간’을 설계했던 교수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상황인지라,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들을 두고 차분히 지난 과정들을 편집하는데 몰두할 수가 없어 제작이 늦어지고 있음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할 거 같습니다. 그러나 꼭, 지금 이 과정까지도 이어지는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엮어, 동지들과 ‘무지개조선소’를 함께 볼 수 있는 날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을 전합니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 제가 하는 기록의 의미를 알아준 덕분에, 카메라를 놓지 않고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카! 고맙습니다! 📖

나는 학령기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노들장애인야학에 입학했다.
학생이 되고 가장 먼저 좋았던 건 급식이었다. ‘학생은 원래 학교에서 밥을 먹는 거구나.’ 시설과 집에서 40년을 살아온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했다. 나는 그 밥이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오랜 싸움 끝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수업 시간, 선배들의 ‘서러운 밥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철원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15년을 살았다. 그곳의 밥은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하는 것이었다. 쉬어버린 콩나물 국, 군내 나는 김치 몇 조각. 밥은 생존의 최소치였다.

그래서 노들야학의 밥상은 내게 특별했다. 노들의 밥은 누구도 식탁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었다. 노들야학은 모두가 함께 먹기 위해 싸워왔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밥상에서 소외당했던 장애인들이 이제는 또 다른 소외를 마주한 존재들과 함께하기 위해 비건식을 마련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며 더 넓은 ‘함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휠체어 장애인과 발달장애인들은 식당 입구에서 멈춰 선다. 턱에 막히고, 계단에 막히고, 좁은 공간에 막히고, 장애를 불편해하는 사회의 시선에 막힌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밥 먹기 위해 싸우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노들야학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투쟁의 결과였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이야기이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어온 투쟁의 기록이다.


3년 동안 준비한 이 기획이 현카의 제작지원으로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중증장애인인 내가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의심하던 시간,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는 나를 믿어주었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현장에서 살아있는 영상활동가가 되겠다는 약속을 함께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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