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om <광장 너머> 최종호, 최호영 감독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난 2025년 <광장 너머>라는 작품 제작 계획으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하 현카) 활동지원을 받은 최종호, 최호영입니다. 저희는 지난 윤석열 퇴진 정국 속에서 윤석열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광장의 면면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의 광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했듯 저희 영상 기록자들에게도 참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응원봉과 깃발들, 뜨거운 무대 발언들이 쏟아내는 에너지를 담아내는 일도 두말 할 것 없이 중한 경험이었지만, 다양한 시민들과의 거리 인터뷰 기억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던 야구팬 모임원들, 어린이로서 접한 2016년 촛불집회를 따뜻하게 기억하고 다시 한번 광장에 나온 청소년, 계엄의 공포스런 기억을 안고 나온 광주 출신 할머니,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목격한 날부터 각종 투쟁현장을 누비는 기수가 된 성소수자 등… 카메라를 든 낮선이의 접근에 친절히 화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다양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광장 너머>는 지난 광장에서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을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사람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우리의 현재를 살펴보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해 4월 윤석열 파면이 이루어진 뒤, 저희 둘을 비롯한 비상행동 미디어팀원들은 그 동안의 기록들을 활용한 다큐제작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그 첫번째 결과물로, 팀원들 각자의 시선으로 지난 광장의 기억과 현재의 고민을 그린 옴니버스 다큐 <우리는 광장에서>를 지난해 가을 완성했습니다. 작품 속 총 여섯가지 에피소드 중 저희 둘도 각각 한 부분을 맡아 연출했는데요. 호영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윤석열 정권 하에서 맞닥뜨려온 시간들을 추려 에피소드 <리본 가져가세요!>를 만들었고 종호는 광장 현장에서의 여러 인터뷰 기록들을 엮어 에피소드 <윤석열 너머>를 만들었습니다.
이어 비상행동의 의뢰를 받아 지난 3월 두번째 결과물 <비상12.3>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광장에서>가 저희 미디어팀원들 각자의 시선에 입각하여 광장으로부터 가지를 뻗어나가고자 했다면, <비상12.3> 제작에서는 각 팀원들이 김영욱 팀장의 연출 아래 힘을 모아 12.3 계엄부터 4.4 윤석열 파면까지 123일의 투쟁을 하나의 기둥으로서 통사적으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완성 이후 영화제, 상영회 등을 통해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왔고 앞으로 더 많은 상영 기회를 만들어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종호의 한마디: 현카의 소중한 지원을 받은지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저희 둘을 비롯한 비상행동 미디어팀원들은 현재 개인 다큐멘터리스트, 미디어활동가로 돌아가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활동하던 구로마을TV로 돌아가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고 있는데… 실은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먹고 살기만도 팍팍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다큐 작업을 놓고 있었는데요. 이번의 뉴스레터 참여를 계기 삼아 부끄러운 마음 안고 다시 힘을 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광장에서의 기록들을 다시 세심히 살펴보고, 그 겨울 기꺼이 카메라 화면 안에 들어와 주었던 고마운 분들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해나가려 합니다.
호영의 한마디: 최근 안산으로 이사를 하고, 또 정신없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이었던 세월호 12주기에도 여러 기록과 영상을 만들었고, 세월호 유가족분들로 이뤄진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과 함께 세월호 연극들을 올리는 ‘4월 연극제’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이후 시간들이 참 쏜살같습니다.
지난 1년간 여러 곳에서 여러 계기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참 여러 사람들이 ‘연대하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비상했던 광장은 아쉽게도 끝났지만, 그 광장의 시간이 모두에게 특별했고 또 계속 그리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바쁜 일상을 보내다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난 만큼 그 끝남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일상 속에서 다시 분투하는 사람들, 새로이 인간관계를 맺거나, 혹은 멀어지기도 하며 그 시간들을 오롯이 보내온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지난 탄핵광장의 긴 겨울을 지나며, 현카에서 주셨던 마음이 참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또 점점 배웠습니다. 작업의 주제인 ‘광장’은 어쩌면 끝이 났고, 저를 포함한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시간을 또 흘러가는 만큼 오롯이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작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
💌 from <도살장 비질 사진집> 이슬하 작가

지난해 현카 제작지원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면서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비질 기록을 엮어 사진집을 만들겠다고 지원서에 써내긴 했는데, 제 말이 거짓말이 될까 봐 두려웠거든요. 비질(vigil)이란 도살장 등을 찾아가 비인간동물의 현실을 마주하고 증언하는 활동을 말하는데요. 저는 2023년부터 동물권 활동가들을 따라다니며 비질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사진들을 이제는 정리해 내놓을 때가 된 것 같아 공모에 지원했지만, 막상 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책을 내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어요. 저를 굼뜨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이 자꾸만 미뤄졌어요. 외장하드에 쌓인 사진 더미는 들춰볼 엄두가 나질 않았고, 예전엔 꽤 괜찮게 보였던 몇몇 사진들도 어쩐지 너무 형편없어 보였습니다. 자신감은 줄어들고 주저함은 늘어갔습니다. 저의 안부를 묻는 현카의 다정한 연락에도, 숙제 못 한 걸 들킨 학생처럼 괜스레 움츠러들곤 했어요. 돈을 받았으니 언제까지 결과물을 제출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나 검사하는 이가 따로 없더라도, 저는 제가 스스로 내준 그 숙제를 꼭 끝내야만 했습니다. 마음의 짐이 돼버린 작업을 언젠가는 반드시 갈무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영정사진을 찍고 있다.’ 비질 사진을 찍으며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돼지들을 실은 트럭이 도살장 앞에 잠시 멈췄다 이내 쌩하고 철문 안으로 사라져 버리면, 방금 뷰파인더 너머로 마주친 돼지의 얼굴은 그의 마지막 초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찍는 족족 영정사진이 되는 이 끔찍한 촬영에 진저리가 나 그만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하는 날도 있었죠. 그리고 사진을 웬만큼 건진 날에도 진저리가 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진 몇 장 건질 수는 있어도, 제가 그날 만난 생명 중 단 한 명도 구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비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순간 긴장이 풀리며 지쳐버린 몸에는 그렇게 무력한 마음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힘이 없는 사진들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힘이 없는 사진들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작가로서 저의 욕심처럼 느껴졌습니다. 프레임 속 존재들 대부분이 죽어버린 이 무력한 사진들은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 외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책을 내야 한다는 마음의 짐보다 저를 훨씬 무겁게 짓누른 물음이었습니다.


무력한 마음과 무거운 물음에도 책을 꼭 완성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제 사진들이 단순한 포트폴리오가 아닌, 싸움의 재료가 되기를 감히 바랐어요. 우리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일을 함께 직시하는 데 제 사진이 제법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동료들과 제가 부딪치고 절망했던 순간들이 그저 무의미했던 시간으로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견고한 벽을 흔들어보려 노력했던 흔적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약했던 몸부림을 기록한 사진들이 또 다른 운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진집을 만들었어요. 올봄 어설프게나마 책으로 묶인 사진들은 그전보다는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무력하게만 보였던 이 사진들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과 만나 힘을 얻을 방법을 강구해 보고자 해요. 모쪼록 변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더 힘을 내보려 합니다. 📖
💌 from <클린> 박명훈 감독


파주 북쪽 끝, 저 멀리 대한민국의 주적 북한이 보인다.
곳곳에 참호들이 보이고 군인들을 태운 트럭들이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
카메라를 메고 산비탈에 늘어선 참호 길을 따라 올라간다.
곧이어 군 시절 자해를 했던 벙커 앞에 도착한다.
이곳은 경찰의 경고 방송도 활동가들의 발언도 없는 고요한 현장이다.
이렇게나 정적인 곳을, 또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를 어떻게 촬영할지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나는 왜 죽었나? 나는 왜 추방당했나? 아니 스스로 도망쳤던 것인가?
‘명훈의 작업은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 아닐까요?’
한 활동가 동지 분이 한 말이 자꾸 떠오른다.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군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가 성소수자임이 부끄러운 것?
그것이 내 인생과 우리 가족에게 하나의 흠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다.
나도, 사회도 지우고 싶은 흠.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죽었던 이후에도 누군가는 성별정정을 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군형법 92조 6’이라는 이상한 법으로 군대에서 지워졌다.
나는 지워졌던 존재로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앞에 표지판들이 보인다.
‘접근 금지’, ‘사진촬영 금지’
이러한 금지들로 그들은 어떤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여전히 불허된 존재로 내가 죽은 이곳에 카메라를 세우고 프레임 안에 들어선다. 더 이상 지워지고 도망치는 유령이 아닌 생생한 육체를 가진 사람의 이미지로 기록된다. 📖
💌 from <몸의 자리들> 윤성희 감독

자꾸만 기울어지는 세계에서 미끄러지지 않을 자리를 갖는 일은 가능할까.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 일(사람, 장소, 환대/김현경)이라고 했지만 기울어진 자리들은 너무 좁아 무언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헀습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는 미끄러지고 밀려나면서도 또 다른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옵티칼 공장이 폐쇄되고 사라진 일터에서 자신들의 몸을 새로운 자리로 만들어낸 여성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여성노동자 두 명이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위태로운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현카의 지원 덕분에 다행히 그 생각을 <몸의 자리들>이라는 프로젝트로 실행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수행하는 조합원들을 겨우겨우 따라다니면서, 막막한 시간과 더 묵묵해지는 얼굴들을 목도하면서 기획의 틀로 현장을 보는 일의 한계를 크게 느끼기도 합니다.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은 최근 구미에서 평택으로 복직투쟁 거점을 옮겼습니다. 지난해 고공농성을 해제했지만 노사교섭은 아직 교착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 없음’이 ‘존재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자리는 임시적이고 끊임없이 격변을 겪는다. ... 자리 없이 사이에 존재하는 상태를 불안정한 균형, 취약성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여러 언어와 문화, 존재 방식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야말로 불화하는 자들의 강점이 아닐까?” (제자리에 있다는 것/클레르 마랭)
조합원들의 투쟁과 함께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일자리를 축으로 삶을 뻗어간 이야기들을 토대로 구미공단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산업화 신화와 공단의 도시. 산업 특성상 여성노동자들이 많았고 경상지역뿐 아니라 전라지역에서까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왔다는 곳. 많은 외국기업을 유치했고 그만큼 많은 공장들이 폐업 청산을 반복해 왔다는 곳. 한국옵티칼의 사례도 그런 반복 중 하나라는 것. 그러나 여성의 노동과 해고와 투쟁은 공단의 역사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몸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요구하고 새로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지금 자리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존재했고 계속 존재하는 것들에게도 또 다른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런 일들을 좀 더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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