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I(British Film Institute)는 인력 양성, 상영·배급·제작 지원 등과 함께 영화 및 영상물의 보존과 상영이라는, 영화·영상 분야의 ‘진흥’과 ‘보존’ 모두를 업무 영역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의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합쳐진 형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BFI가 다루는 대상이 극장을 통해 공개되는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부터 OTT 플랫폼과 게임에 이르는 다양한 영상물을 모두 포괄한다는 지점이다. 2022년 발표한 10개년 전략 “Screen Culture 2033”(*주1)에서는 ‘스크린 문화’를 키워드 삼아 영화와 텔레비전은 물론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향유되는 영화·영상 콘텐츠를 포괄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영화, 텔레비전,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영화진흥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공공기관으로 나뉘어 있으며, 때문에 OTT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나 유튜브 및 스트리밍 시장의 확장 앞에서 애먹고 있는 것과는 한결 다른 대응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BFI는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이와 같은 전략을 세울 수 있었을까?

BFI는 영국의 교육 및 문화 영화 위원회(Commission on Educational and Cultural Films)의 1932년 보고서 “The Film in National Life”(*주2)에서 교육 및 문화적 목적으로 영화를 발전시키고 확장하기 위한 국가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에 근거해 1933년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민간 기구로 운영되었으나, 1949년 제정된 British Film Institute Act를 통해 공적 자금이 투입될 근거를 마련했고, 현재는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복권기금(National Lottery), 그리고 여러 수익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연례보고서(*주3)를 확인해 보면 2023/2024(23.04~24.03) BFI의 수익과 지출은 각각 1억 2천만, 1억 파운드로,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예산 715억원의 4배가량이다. DCMS와 복권기금이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BFI Southbank나 BFI IMAX의 티켓 판매, 잡지·도서와 DVD·블루레이 판매 등을 통한 자체 수익이 30%가량을 차지한다. 그 밖의 수입은 각종 재단·기업·개인 후원금으로 채워진다. BFI는 복권기금의 배분기관인 만큼 복권기금의 대부분이 BFI가 진행하는 지원 정책에 투입된다. 국가 복권 수익의 2.7%가 BFI의 영화 제작 지원 보조금으로 사용된다. BFI는 2026년까지 복권기금 5,400만 파운드(약 853억 원)를 영화 제작 기금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개발기금, 창의적 도전 기금(신기술 도입), 디스커버리 기금(신진 감독 지원), 임팩트 기금(350만 파운드 초과 장편영화) 등 다양한 종류의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BFI가 전개하는 사업은 상영, 아카이브, 출판, 교육, 지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상영은 BFI Southbank와 BFI IMAX에서 주로 진행되며, 런던 필름 페스티벌이나 BFI Flare LGBTQ+ 영화제 등 BFI가 주관하는 주요 영화제가 이곳에서 개최된다. 국립 영화관(National Film Theater)의 역할을 맡은 BFI Southbank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나 영화의 전당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오프라인 극장 외에도 BFI Player라는 별도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 또한 제공한다. 이는 BFI 국립자료원(BFI National Archive)의 아카이브를 활용해 영국의 영화와 텔레비전 콘텐츠는 물론, 영국 외 영화 및 텔레비전 기획전을 선보이기도 한다. BFI Southbank와 함께 위치한 BFI 루벤 도서관(BFI Reuben Library)의 미디어테크에서도 BFI Player를 이용할 수 있다.
BFI 국립자료원은 National Film Library(1935~1955), National Film Archive(1955~1992), National Film and Television Archive(1993~2006)을 거쳐 현재의 이름으로 자리잡았으며, 50,000편 이상의 픽션 영화, 100,000편 이상의 논픽션 영화, 625,000편 이상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카이빙 되어 있다. 영국에서 제작된 작품뿐 아니라 주요 영국 배우와 감독이 해외에서 출연/제작한 영화 또한 아카이빙 대상이 된다. 또한 영화와 텔레비전 영상자료뿐 아니라 포스터, 스틸컷, 홍보자료, 대본, 소품 등의 수집 또한 겸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는 수집 사업과 유사하지만, 텔레비전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수집 대상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출판 사업의 경우엔 월간 영화잡지 Sight & Sound를 출간하고 있다. 1952년부터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Sight & Sound는 매 10년 동안 전 세계 감독과 영화평론가, 영화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이는 BFI와 Sight & Sound가 지닌 권위를 일정 부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BFI에서 출간함에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웹진 한국영화(구 월간 <한국영화>)나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천국>처럼 기관지의 성격보다는 <키노>나 <까이에 뒤 시네마>와 유사한 비평지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영국 영화평론가나 영화연구자 등이 생산한 텍스트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작품론, 작가론, 장르론, 배우론, 영화·미디어 이론 등 다양한 종류의 단행본이 출간된다. 더불어 DVD·블루레이 등 물리매체 발매도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역시 영국의 영화 및 텔레비전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 영화를 출시하기도 한다.
교육은 주로 청소년이나 신진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다. BFI Film Academy를 운영하며 16~19세 청소년을 위한 단기과정과 전문가 과정을 제공한다. 신진 창작자를 위한 Future Film Festival을 개최하며 상영 기회를 제공하고, 신진 창작자의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한다. 또한 아카메디의 프로그램을 꾸려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 육성 코스, VAFTA와 연계된 멘토링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영국에서 제작되는 대규모 영화의 인턴 체험 코스 또한 제공된다. 이를테면 영국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바비>나 <미키 17> 등 할리우드 영화 제작 현장과 인턴을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복권기금을 활용한 BFI Network 프로그램은 프로듀서, 각본가, 감독 등 신진 창작자를 대상으로 단편 및 장편영화 개발 지원, 전문가 네트워킹 지원 등을 제공한다. 지원사업의 경우 교육 사업과 여러모로 겹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복권기금을 통해 조성된 예산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한다. 교육 프로그램이 창작자에 초점이 맞춰저 있다면, Cinema for All을 통한 비영리 커뮤니티시네마 지원이나, 국가 유산(National Heritage)으로서의 영화·영상 콘텐츠를 확산시키기 위해 790만 파운드를 투입한 BFI National Lottery Screen Heritage Fund를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Screen Culture 2033’ 또한 이러한 지원사업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영화와 텔레비전뿐 아니라 디지털미디어, 게임, XR 등을 포괄하는 ‘스크린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정책으로, 관객 다양성 개발, 디지털 플랫폼과 게임 등 폭넓은 미디어를 포괄하는 문화 수용 정책, 아카이브 컬렉션 연구, 디지털화 및 온라인 배급, 영화·영상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 등이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BFI가 전개하는 상영, 아카이빙, 교육, 출판 등 여러 사업 영역을 포괄하는 ‘Screen Culture 2033’ 전략은 BFI라는 기관의 성격을 드러낸다. BFI 또한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처럼 영국 박스오피스나 산업 통계 자료를 제공하고 여러 연구 사업을 진행하며, 외적으로는 BFI Southbank와 BFI IMAX 등 시네마테크에 가까운 인상을 주기에 단순히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역할을 합쳐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다만 BFI는 교육-지원-상영 등의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여러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는 국내 영화·영상 거버넌스 체계와의 차이점이다. BAFTA(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에서 영화, 텔레비전, 게임 분야의 시상식(*주4)을 진행하고 있음을 떠올려 보면, 영국 내에서 정책적으로 영화·영상 미디어의 여러 영역이 서로 배타적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된 범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FI가 전개하는 활동은 복권기금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재원(*주5)과, 10개년 장기 계획을 구상 및 실현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영비법상 영화의 정의에 따라 활동영역에 제약이 발생하거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나아가 이러한 맥락 속에서 OTT 플랫폼 등 새로운 영화·영상 미디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내 거버넌스 상황을 떠올려 보면, BFI의 사례는 산업 안에서 영화·텔레비전·게임 등으로 인력이 자유로이 교환되는 현재의 상황과 다양한 미디어를 스마트폰 스크린 혹은 단일한 플랫폼을 통해 향유하는 스크린 문화에 관한 인식이 정책 안에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
1) 관련하여 BFI 공식 블로그를 참조할 수 있다. https://blog.bfi.org.uk/
2) 원문을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archive.org/details/dli.ministry.12866/page/n3/mode/2up
3) BFI 홈페이지에 1999년부터의 연례 보고서가 공개되어 있다. https://www.bfi.org.uk/strategy-policy/annual-review-management-agreement
4) 1947년 영국 영화 아카데미(The British Film Academy)로 출범한 BAFTA는 1955년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을 추가하고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1998년 BAFTA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어워드(BAFTA Interactive Entertainment Awards)를 신설했는데, 게임 분야는 이때부터 다뤄지기 시작한다. 이후 2003년 영국 아카데미 게임상 시상식으로 통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5) 2023/2024 연례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복권기금의 총량이 줄어들고 있음이 재정적 리스크로 언급되긴 했다.
글쓴이. 박동수
영화평론가
| 미디어 생태계의 독립을 꿈꾸며 – Doc society 소개 (0) | 2025.07.03 |
|---|---|
| 호주 공동체미디어기금(CBF)이 요즘 우리에게 보내는 질문 (1) | 2025.07.03 |
| 미룰 수 없는 과제를 마주하는 우리의 제안 - 기후위기에 관한 독립미디어세미나 결과를 공유하며 (0) | 2024.12.19 |
| 오직 더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구할 것이다 - 독 소사이어티 ‘기후 스토리 유닛’ (Doc society ‘Climate Story Unit’) (0) | 2024.12.19 |
|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스토리텔링 - Climate Story Lab 지원 프로젝트 사례를 바탕으로 (1) | 2024.12.1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