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 호주 공동체미디어기금(Community Broadcasting Foundation, 이하 CBF)은 낯설지 않다.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할 때 동료에게서 종종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연구 저널 ACT!에 CBF가 언급된 적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현재 ACT! 웹사이트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검색 엔진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CBF 이야기가 나온 첫 기사는 ACT! 제18호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공적 지원 사례 – 영국 Ofcom, 공동체 라디오 기금 운용안 마련’(나진아, 2005)이다. 나진아의 기사는 영국 오프콤(Ofcom)이 공동체 라디오를 지원하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앞둔 상황을 전달한다. 여기서 CBF는 오프콤(Ofcom) 공동체 라디오 지원 제도를 평가할 때 참고하면 좋을 선례, 레퍼런스로 언급된다.
그다음에는 제26호 ‘우리는 호주의 가장 큰 미디어섹터다! - 호주공동체방송연합 CBAA’(김지현, 2005)가 있다. 호주공동체방송연합(이하 CBAA)은 호주 지역에서 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와 관련 기관의 네트워크이고 회원 단체 공동의 성장을 도모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정책 참여를 통해 지원을 촉구하고 일정 부분 공공 영역을 견제한다. CBF는 CBAA의 주요 파트너 단체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CBAA 이야기는 호주의 공동체 미디어 산업과 문화가 얼마나 크고도 촘촘한지, 얼마나 긴밀한 거버넌스 위에서 구현하는지, 또 공동체 미디어 실천에 관해 공감대가 얼마큼 잘 형성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2010년대 후반 두 개의 ACT! 기사에서 CBF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109호 ‘호주 최대 다문화 공동체 라디오방송 4EB FM’(이진행, 2018)은 다문화 주제 공동체 라디오 사례로 4EB FM을 소개하는데, 여기서 CBF는 4EB FM에 다국어 방송 기금을 지원하는 주체로 나온다. 이진행이 쓴 다른 기사로 제111호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 – 호주공동체미디어기금 CBF(Community Broadcasting Foundation)’(2018)는 한국의 공동체 미디어 지원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CBF 사례를 참고해 보자고 제안한다. 이진행의 글은 CBF의 사업 구조, 세부 사업 구성 전반을 소개하고 있는데, CBF가 지원의 다각화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속적인 보조금 지원을 통해 공동체 미디어 단체의 성장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정리하면 CBF는 공동체 미디어의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고, 그 방법의 다층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례로 평가된다. 그럼, 오늘날 다시 CBF를 마주하는 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웹사이트를 보면 CBF는 호주 정부의 공동체 방송 프로그램(Community Broadcasting Program)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지점에서 CBF는 기금 관리형 기관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CBF는 공동체 방송 프로그램 기금을 보조금의 형태로 재분배하는 것을 주요 미션으로 소개하는데, 이 지점에서는 CBF가 중간 지원 조직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공적인 기금을 관리하고 배분한다는 특성을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영화발전기금 관리)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공동체 미디어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설립한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위탁 집행형 공공 기관으로 의사 결정 구조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관여가 깊다는 사실도 상기해 본다. 우리가 영화진흥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기금 관리형인지 위탁 집행형인지 잘 모르는 이유는 유형을 막론하고 이들이 국가 정부와 중앙 부처와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해당 기관 종사자는 서운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들에게서 미디어 분야 전문성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1984년 공영방송재단(PBF)에서 시작한 CBF는 국가 정부의 기금과 민간 공동체 미디어 사이를 ‘매개’하면서 후자의 자율성이 침해받지 않도록 방어하며 또 조직 자신의 자율성을 잘 지키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내부 행위자가 어떤 미시적 압력을 받는지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CBF를 지원 주체보다 매개 주체로 바라보았을 때 그저 자금을 창작 주체에게 제공하는 일방적 행정보다는 쌍방향적인 공공 커뮤니케이션으로서 공동체 미디어 지원 제도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전문성을 가지고 자율성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공공 지원 조직을 꿈꾸게 한다. 다만 호주 CBF에게 매개 주체로서 정체성과 전문성은 유지와 지탱의 과제지만, 우리가 놓인 상황과 조건에서는 투쟁과 획득의 과제이다. 우리가 만나는 공동체 미디어 관련 공공 기관은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
CBF의 모든 사업은 보조금(grants)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지난해 지원한 보조금은 2,050만 달러이고, 수혜 단체는 176개 조직이라고 한다. 보조금 지원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바로 (1) 콘텐츠 보조금 (2)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보조금 (3) 개발 및 운영 보조금 (4) 신속 대응 보조금 (5) 부문 투자 보조금이다. CBF는 보조금 유형별로 지원할 수 있는 상황, 환경, 조건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지속 가능성과 문화 다양성을 주요 이념 삼는다. CBF는 기금운용 원칙으로 (1) 지역성 (2) 협동성 (3) 포용성 (4) 신뢰성 네 가지를 제시한다. CBF는 보조금 탭에서 지원금 예산 편성, 예산 집행, 사업 평가에 관한 가이드를 콘텐츠로 제공한다. 특히 CBF는 신뢰성의 차원에서 투명한 보고서 작성과 제출을 안내하고 있다.

더불어 CBF는 자원봉사자(Volunteer) 제도를 강조한다. 여기서 자원봉사자는 지역 사회 안에서 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참여하고, 단체를 지지하고, 때로는 CBF의 취지에 부합하게 보조금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지 부정 집행은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는 CBF를 평가하기도 한다. CBF는 보조금 평가자, 보조금 자문 위원회 등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지원하는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CBF 보조금 평가자는 (1) 원주민 및 섬 주민 (2) 여성 (3) 장애인 (4)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5) 문화적, 언어적 소수자 (6) 어린이 (7) 비수도권 지역 거주민 등 문화 다양성을 주요 조건으로 한다. CBF 보조금 평가자 제도는 사례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한국 지역 문화재단에서 시도하는 지역 주민 모니터링이나 지역 문화 활동 비평을 떠올리게 했다. 후속 리서치를 하게 된다면 공동체 미디어 비평을 탐색하고 집단적인 실험을 논의하고 싶다. 나는 공동체 미디어를 비평한다면 비평 주체의 다양성, 위치성, 정체성이나 활동의 과정성이 주요 질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호주 공동체미디어기금(Community Broadcasting Foundation)의 특징을 짚어보며 함께 고민하고 또 심화 연구하고 싶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CBF가 호주 정부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질적이고 상세한 리서치가 필요해 보인다. 호주 바깥에서 웹 자료로는 내부 구조와 역학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미디어 분야의 정책 결정에서 정부, CBF, 공동체 미디어 조직 사이 힘의 분배는 잘 이루어져 있을까? 그 균형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공동체 미디어 지원 체제를 보완할 방안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여 신뢰성과 투명성 그리고 자율성 사이에서 CBF 보조금 집행과 정산은 공동체 미디어 행위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한국의 것, 예컨대 이나라도움, 앤카스, 에스카스 등과 CBF의 시스템은 얼마나 다를까? 이 질문은 결국 행정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CBF 보조금 평가자 모델을 한국에서(시청자미디어재단,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도 미래에는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사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 영화제를 대상으로 관객 평가를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평이 아니라 설문에 훨씬 가깝다. 영화제를 관객이 평가해야 하듯 공동체 미디어의 비평 주체 또한 평범한 시청자(청취자, 독자 등)와 지역 주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SNS 기자단’, ‘서포터즈’ 등의 형태가 아닌 장기적이고 진정성 있으며 주민 주도적인 비평 문화를 공동체 미디어 영역에서 만들 수는 없을까? 담론 형성을 위해 공공 영역에는 어느 정도 어떤 개입을 요구할 수 있을까? 토론 거리가 다시 잔뜩 쌓였다.□
글쓴이. 임종우
2018년부터 2023년까지 ACT!의 기획과 편집에 참여했다. 독립 미디어(독립영화 등), 미디어 교육, 미디어 큐레이팅에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문화연구(문화 매개, 문화정책 및 교육)를 공부하는 중이고, 미디액트에서는 동료와 함께 독립 미디어 세미나에 참여하며 새로운 실천 과제를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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